술이 내게 데이트 신청 하던 날

술이 내게 데이트 신청 하던 날 …. 최범영

 

술도 때로는 외로운지 내게 데이트 신청을 한다 
만나면 한 풀 두 풀 제 속마음을 드러내며 
울었다 웃었다 를 되풀이한다 

술은 나를 보고 자주 비웃는다 
사내가 쫀쫀하게 이것 밖에 안 되냐고 
내 눈에서 천둥 번개가 치지만 
열 올릴 수 없는 아픔에 난 침묵 

술이 괴로워 할 때 시가 튀어나와 위로를 해준다 
시와 술은 눈물을 찍어내기도 하고 
웃음 꽃을 피우며 부둥켜도 안는다 

어느 땐가 술이 괴로워 내 곁에서 뛰쳐나가던 날 
술은 시와 길바닥에서 통곡을 했다 

졸리운 눈을 한 가로등이 집엣 사람 불러내고 
그때마다 나는 그들과 숨바꼭질을 하며 
또 술과 시가 노는 곳을 찾아 숨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