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처럼 ….이순현
보내주신 글 잘 받았습니다
겉으로는 뿌리까지 고스란히 읽어낼 수 없어
메스로 글 하나하나를 절개합니다
절개면은 또다른 겉이 되고 또다른 메스를 부릅니다
여기저기 도려내고 가르다 보니
솟구치는 피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엉겁결에 헤쳐놓은 글들을 한꺼번에 쓸어 넣고
질긴 실로 촘촘하게 기웠습니다
흉터투성이 글의 가장자리에
둥근 고리를 꿰고 몸의 열기로 여는 자물쇠를 달아둡니다
잠긴 것을 열 때마다 달아오르는 지문으로 더듬습니다
실어 보내신 의미를 환하게 열 수는 없을 것 같아
내 몸 처럼 어디든 챙겨 들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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