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소주 한 병과 노숙자

종이섬 2009. 11. 17. 23:47



소주 한 병과 노숙자.. 황라연
가을비 한기가 뼛속까지 파고드는데
물기 축축히 배어나는 지하도 계단 모서리에 쭈그리고 앉아
김 오르는 사발면을 앞에 두고 소주 한 병을 앞에 두고
긴 기도를 올리는 사람
돈이 없었을 텐데 착한 이가 건네었나
깍지 않은 수염 감지 않은 머릿결
수염을 깎지 않아도 머리를 감지 않아도 되는 그곳에 그는 그렇게 살고 있었다

소주를 마신 것은 그가 아니라 그 인생이 마신 것이었다
한 병의 소주를 앞에 두고 평생을 부어내어도 다 쏟아지지 않을
허기진 인생을 쏟아 붓는 것이다

채워지지 않는 기아(飢餓 )에 대한 욕심 덩어리를 버리고
사발면 하나와 소주 한 병을 앞에 두고 넉넉한 식탁을 꾸미며
그것만이 필요한 것이라고 여분의 길이 남아 있지 않듯 그렇게 사는 것이 충분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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