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시간의 모습

종이섬 2009. 1. 9. 22:30

 

 

 

시간의 모습 . 정건우

 물 받으며 가만히 보니 욕조를 자근자근 씹으면서 차오르는 수위
아하 저런 것이 바로 시간의 모습이다


불다가 이내 그치는 바람에서 넘어졌다 다시 걷는 첫돌 박이 걸음에서
시간은 그 사이에 잠깐 자신을 드러낸다


이 물소리도 기실은 시간의 소리다
아파트 캄캄한 배관 속을 돌아다니는 것도 시간이다


내가 지금 수도꼭지를 튼 것은 그러니까 그 시간이란 것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쪽과 저쪽 인 것과 아닌 것
그 서먹한 틈새에서 늘 다음이 궁금한 시간 물이 넘친다


떠밀린 바가지는 바닥에서 요란하고 소리 없이 사방팔방으로
시간이 다시 흩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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