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어제와의 이별

종이섬 2012. 11. 6. 11:20

    어제와의 이별


    대숲을 툭 치며 지나가는 바람으로부터
    물결 세게 부딪치는 섬으로부터
    두껍게 얼어버린 강으로부터 이별을 고하겠다


    대궁 꺾어진 채 시들어가는 화분 속 꽃으로부터
    고개 푹 숙이고 기울어가는 허공의 초승달로부터
    눈발 날리며 어두워져 가는 내 속의 하늘로부터 이별을 전하겠다


    어제는 모두 상처를 가지고 있어서
    흙이라던가 물이라던가 눈이라던가
    혹은 빛으로 몸을 감추는 것인데
    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상흔이 더 깊은 법이다


    때로는 눈빛의 가시에 찔리고 때로는 언어의 칼에 베인
    상처만 오롯이 남는 법이다
    그 모든 어제와 이별하는 것만이 오늘을 사랑하는 것이다


    어제를 떠나 보내는 것만이 내일과 온전히 해로하는 것이다

    오늘도 어제처럼 날이 흐리다
    무엇으로 또 나를 가려야 하는지 문득 바라본 얼굴에 상처뿐이다


    오늘도 이별이다

 
                        

'좋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 아닌 길   (0) 2012.11.07
  (0) 2012.11.06
그대는 저문 강에 가보았는가  (0) 2012.10.30
향수   (0) 2012.10.25
밤새   (0) 2012.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