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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날이있다

종이섬 2013. 3. 21. 12:14

 

그런날이 있다



살아 있음을 느낀다.

아직은 술잔이 남아 있기에 아무도 없는 바람과 바쁜 차들의 거리에

그리움도 말라 버린 낙엽의 가을에

아직은 살아 있음이 우습다.

 

나는 출렁인다.

눈 깊은 바람은 또 얼마나 나를 거부하고

헤매는 사람들끼리도 방해 받고 싶지 않음으로

 

머리 속에는 늘 파도가 거품으로 부서지는 하얀 파도가 출렁이고

나조차 살아 있음을 아무리 의식해도

나는 아프지도 않고 땅은 자꾸만 비틀거리며 술잔이 나를 보고 웃고 있는데

지금이 어디론가 가버린다.

 

지쳐 있는 나와 계절을 버려 두고 가 버려질 수만 있다면.

 

언제일 수 없는 만남으로 인하여 낡은 추억 하릴없이 떠올리고,

그냥 살아갈 수 있는

그냥 적당히 죽어 버릴 수 있다면 뭐든 붙들어야 하는

아직도 아쉬움에 살아 있지만 내 안타까운 이 삶

 

다 살고 난 마지막 날조차 이 아쉬움 아쉽지 않을 자신도 없기에

바람 잘 지나가는 이 길에 더욱 흔들리는데

나무는 왜 저렇게 서서

이 눈빛 매서운 바람의 거리에서 나를 재촉 하지도 않는데

해야 할 일 하나도 없이 나는 이렇게 추위를 느끼는데

나무는 또 저렇게 의연히 서 있나

 

나는 쓰러지려는 걸 억지로 부여잡고 있는데

잠시 부는 바람에도 너무 잘 흔들리고 있는데

나무는 나를 지치게 한다

 

무엇이든 말해야 하고 말하고 싶은데 어디를 향해야 할지도 알 수 없이

땅은 비틀거리며 일어서 내 속에 울고 있는 나를 돌아보고 있다.

 

아 웃고 싶다.

살아 있음으로 하여 크게 웃고 싶은 그런 날이 있다.

 

서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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