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여름 낙조

종이섬 2013. 5. 31. 11:19

             



      <여름 낙조 송수권·>





      왜 채석강변에 사는지 묻지 말아라
      나는 지금 만 권의 책을 쌓아 놓고 글을 읽는다


      만 권의 책

      파도가 와서 핥고 핥는 절벽의 단애
      사람들은 그렇게 부른다


      나의 전 재산을 다 털어도 사지 못할 만 권의 책
      오늘은 내가 쓴 초라한 저서 몇 권을 불지르고
      이 한 바다에 재를 날린다


      켜켜이 쌓은 책 속에 무일푼 좀 벌레처럼
      세들어 산다


      왜 채석강변에 사느냐 묻지 말아라
      고통에 찬 나의 신음 하늘에 닿았다 한들
      끼룩끼룩 울며

      서해를 날으는 저 변산 갈매기만큼이야 하겠느냐


      물 썬 다음 저 뻘 밭에 피는 물 잎새들만큼이야
      자욱하겠느냐


      그대여

      서해에 와서 지는 낙조를 보고 울기 전에
      왜 나 채석강변에 사는지 묻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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