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1165

3월

3월 … 나태주어차피 어차피3월은 오는구나오고야 마는구나 2월을 이기고추위와 가난한 마음을 이기고넓은 마음이 돌아오는구나돌아와 우리 앞에풀잎과 꽃잎의 비단방석을 까는구나새들은 우리더러무슨 소리든 내보라 내보라고 조르는구나시냇물 소리도 우리더러지껄이라 그러는구나아 젊은 아이들은다시 한번 새 옷을 갈아입고새 가방을 들고새 배지를 달고우리 앞을 물결쳐 스쳐가겠지그러나 3월에도외로운 사람은 여전히 외롭고쓸쓸한 사람은 쓸쓸하겠지    요즘 트위터 페이스북 더보기 싸이월드 미투데이 -->

좋은글 2016.03.03

저녁 빛

저녁 빛 … 남진우 붉은 저녁 해 창가에 머물며 내게 이제 긴 밤이 찾아온다 하네 붉은 빛으로 내 초라한 방안의 책과 옷가지를 비추며 기나긴 하루의 노역이 끝났다 하네 놀던 아이들 다 돌아간 다음의 텅 빈 공원 같은 내 마음엔 하루 종일 부 우연 먼지만 쌓이고 소리 없이 사그라드는 저녁 빛에 잠겨 나 어디선가 들려오는 울먹임에 귀 기울이네 부서진 꿈들 시간의 무늬처럼 어른대는 유리 저편 풍경들 어스름이 다가오는 창가에 서서 붉은 저녁에 뺨 비비는 먼 들판 잎사귀들 들끓는 소리 엿들으며 나 잠시 빈집을 감도는 적막에 몸을 주네

좋은글 2016.02.25

질투는 나의 힘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좋은글 2016.01.26

혼자서 기다리는

혼자서 기다리는 … 정대호 가끔은 오지 않는 사람을 한 없이 기다리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지 그 기다림이 의미하는 걸 생각지 말고 오늘도 그냥 책상에 앉아 가난한 편지를 쓰며 그 가난한 마음으로 가슴 따듯해질 수 있다면 가끔은 마음 한 곳이 텅 비어 있어 누군가 와서 채워주지 않으면 마음 아파할 때가 있지 혼자서 산길을 걸으며 누군가 옆에 그림자 하나쯤으로라도 서 있었으면 하는 때가 있지 가끔은 나도 창가에 앉아 마냥 기다리고 싶을 때가 있지 오지 않아도 올 것만 같아도 올 것 올 것 올 것만 같아도 괜찮다고 생각한 적이 있지.

좋은글 2016.01.19

중년의 편지

중년의 편지 … 김왕노 우울한 샹송이 흐르는 창가에서 중년의 편지를 쓴다 한때 용서하지 못하겠다며 분노를 보냈던 사람에게 너를 용서하지 않을 동안 내가 세상으로 받은 용서에 대해 쓴다 나로 인해 눈물에 젖던 사람에게 쓴다 우울한 샹송이 흐르는 찻집에서 리필 가는 종업의 나직한 발소리 들려오는데 다시 청춘이 리필 되지 않는 가슴으로 중년에 편지를 쓴다 편지 행간에 가을이 오고 이름하나 질듯이 가물거리고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마저 눈발로 산간 지방으로 몰려가 펄펄 내리고 우울한 샹송이 흐르는 오후 창가에 앉아 중년의 편지를 쓴다 내가 한때 뜨겁게 부둥켜안았던 시도 내가 한때 잔 가득 부어 마시던 한 사람의 목소리도 잠깐 나를 취하게 했을 뿐 결국은 나를 떠나가는 빗방울 이었다 우울한 샹송이 흐르듯 세월이..

좋은글 2016.01.11

백지

백지 … 조정권 방황하는 이 옆에서는 아무 질문도 하지 말 것침묵으로서 그에 합당한 예의를 갖출 것그 옆에서는 다만 공손함으로써 그 영혼에 합당한 예절을 갖출 것요란스러운 화장기를 벗길수록 인간의 영혼이란고통 그 자체에 지나지 않는 것살아온 날들과 또 살아야 할수많은 날들의 두려움에 대하여 지상의 위안이란 마치 간섭과도 같은 것그것은 또한 내 스스로에 행하는 강요와도 같은 것때때로 침묵함으로써 이 시간에 나는 마음과 영혼과 빈손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생명을 느끼고 있다살아 있다는 것은 결국 뼈를 찔리는 일이 아닌가뼛속 깊이 찔리는 그 실감나는 시간의 축적인 영혼흔히 바쁘게 지나치다가도 유정한 눈길을 주다 보면백지는 비어있음으로써 충분한 불을 켜고 있다

좋은글 2016.01.06